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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 민주화운동 배경 영화 (1987, 종로, 명동성당)

by ghkuio13570 2025. 5. 10.

 

 

2017년 개봉한 영화 1987은 한국 현대사를 바꾼 민주화 운동, 그중에서도 서울을 중심으로 벌어진 6월 항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출발점으로 하여, 국가 권력의 은폐 시도, 내부의 양심, 언론의 추적, 대학가의 저항, 시민의 분노가 연결되며 결국 한 사회가 거대한 ‘진실의 파도’로 움직이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냅니다. 특히 이 모든 과정은 서울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집니다. 남영동 대공분실, 종로 거리, 대학로, 명동성당… 영화는 이 장소들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진실이 숨겨지고 드러나는 ‘증언의 공간’으로 활용합니다.

본 분석에서는 영화 1987의 줄거리를 기승전결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서울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고, 어떻게 민주화의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중점적으로 해석합니다.

1. 기(起)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침묵으로 시작된 분노

1987년 1월, 서울. 서울대 언어학과 22세 청년 박종철은 경찰의 조사 중 사망합니다. 그는 단지 선배의 소재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다가 숨졌고, 이 사건은 그 자체로 국가 폭력의 상징이 됩니다. 당시 서울은 겉으로는 안정된 도시였지만, 그 내부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었죠.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어이없는 발표로 사건을 덮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서울지검의 최환 검사(하정우)는 부검을 밀어붙이고, 언론인과 국회의원들이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이 초반부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기만성’을 보여줍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실존 장소는 서울 한복판, 종로와 용산 사이에 존재하면서도 대중에게는 철저히 은폐된 공간이었습니다. 이 공간은 영화에서 그로테스크한 조명과 폐쇄적인 구도로 표현되어 ‘보이지 않는 폭력’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합니다.

박종철의 죽음은 단순히 개인의 죽음이 아닌, 서울이라는 대도시 안에서 벌어진 ‘국가의 범죄’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서울은 더 이상 안전하고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국가 폭력의 현장이자 진실이 숨겨지는 무대임이 드러납니다.

2. 승(承) – 진실을 향한 추적, 서울 곳곳에서 깨어나는 사람들

사건 은폐를 눈치챈 내부인들, 그리고 외부 언론과 시민들은 서울을 무대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검찰 내부에서는 최환 검사와 동료들이 사건을 덮으려는 상부와 갈등하고, 신문사 기자 윤상삼(이희준)은 이름도 없이 권력에 맞서 진실을 기사화하려고 고군분투합니다.

서울은 이 시점부터 ‘각자의 진실이 교차하는 도시’로 묘사됩니다. 종로 일대의 관공서, 중구의 신문사 사옥, 시청 광장 주변의 정치 활동가들… 이 모든 인물들은 서울을 가로지르며 연결되고, 각자의 시선에서 박종철 사건을 마주합니다.

여기서 중심적 인물로 등장하는 김정민(김태리)은 학생이자 시민으로, 대자보를 붙이고 유인물을 나르며 진실을 확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녀는 서울의 골목, 버스 정류장, 대학가 등 도시 곳곳을 오가며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시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서울은 더 이상 영화 속 배경이 아닌, 투쟁의 지도가 됩니다. 영화 속 연세대와 고려대, 서울대 캠퍼스의 모습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당대의 긴박감을 현실감 있게 전달합니다. 대학가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은 곧 종로 일대를 관통하며 시위로 발전하고, 서울 한복판에서 진실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3. 전(轉) – 분노의 폭발, 명동성당의 밤

영화는 후반부로 접어들며 클라이맥스인 이한열 열사 사건을 묘사합니다.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은 서울 시내 집회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집니다. 그 충격적인 장면은 사진 한 장으로 전국에 퍼졌고, 시민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습니다.

서울 전역은 항쟁의 장이 됩니다. 광화문과 종로, 시청 앞과 명동, 서울의 심장부에서 수십만 명이 운집해 “호헌 철폐, 직선제 개헌”을 외칩니다. 경찰은 진압을 시도하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명동성당을 전면에 배치합니다.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이 성당은 실제로 민주화운동의 상징 공간이었고, 영화 속에서도 경찰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성역’으로 묘사됩니다.

명동성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장면들—학생들의 합숙, 야당 정치인들의 협의, 종교인의 연설—은 단순한 사건 재현이 아니라, 시대정신의 집약체로 기능합니다. 성당 내부는 어둡고 조용하지만, 그곳에 모인 이들의 눈빛은 뜨겁고 단단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이 순간 ‘항쟁의 도시’로 변화합니다. 권력에 눌려 침묵하던 공간은 외침의 장소로 바뀌고, 고립되었던 진실은 성당 종탑을 통해 세상으로 퍼져나갑니다.

4. 결(結) – 진실의 도달, 도시가 기억이 되다

결국 박종철의 죽음과 이한열의 희생은 시민들의 거대한 물결을 이끌어냅니다. 6월 29일, 전두환 정권은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게 되고, 헌법은 바뀌며 시대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합니다.

영화는 이 시점에서 특정 인물의 영웅서사가 아닌,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의 기억을 부각합니다. 박종철의 아버지가 명동 거리에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상징입니다. 진실은 서울의 거리에서 묻혔고, 다시 서울의 거리에서 밝혀졌습니다.

명동성당 앞에 놓인 국화꽃, 종로의 벽면에 붙은 추모 포스터, 연세대 정문 앞의 헌화… 영화는 실존했던 장소들을 정교하게 복원하며, 도시가 ‘역사의 증언자’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서울은 더 이상 단순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아닙니다. 1987년의 서울은 “시민의 도시”, “진실의 도시”로 거듭났고, 그해 여름을 지나면서 국민 모두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습니다.

결론: 서울이라는 공간이 지켜낸 민주주의
영화 1987은 누군가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도시 서울의 이야기입니다. 진실이 감춰지고, 저항이 시작되고, 분노가 폭발하고, 변화가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졌습니다.

남영동에서 시작된 진실은 종로로 흘러갔고, 명동성당에서 터졌으며, 서울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도시는 침묵하지 않았고, 결국 기억했습니다.

서울은 민주주의가 추상적 가치가 아닌, 구체적인 사람과 거리, 공간에서 이뤄졌음을 증명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영화 1987은 그 증거를 영화라는 형식으로 후세에게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