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 2’는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권력형 부패와 기득권의 면면을 해부하는 액션 드라마입니다. 전작 ‘베테랑’이 재벌 3세의 폭력과 갑질을 고발했다면, 이번 편은 더 정교하고 은밀하게 작동하는 자본 권력과 사회 구조 속 부조리를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무대에서 펼쳐 보입니다. 황정민이 다시 돌아온 형사 서도철과 새로 등장한 정해인(진영 역)의 공조 수사는, 단순한 액션을 넘어 도심 속 정치·경제 권력의 실체를 추적하는 서사입니다. 이 글에서는 ‘베테랑 2’ 속 서울 도심의 공간 배경이 어떻게 영화의 주제와 긴밀히 연결되며, 나아가 관객에게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1. 서울, 권력의 지형이자 현실의 은유
서울은 단지 배경이 아닙니다. ‘베테랑2’에서 서울은 권력이 집중된 상징적 공간이자,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여의도, 강남, 광화문, 종로, 청담, 을지로, 국회와 대기업 빌딩까지—이 모든 공간은 단지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권력 지형을 시각화한 구성입니다.
- 여의도: 자본과 정치가 맞닿은 공간. 금융 부패와 로비의 중심지.
- 강남: 탐욕과 특권의 상징. 사모펀드 본사, 고급 클럽, 펜트하우스.
- 광화문·종로: 공공성과 정의. 기자회견, 진실 폭로의 무대.
- 을지로·청계천: 평범한 시민의 삶과 현실의 간극.
감독 류승완은 이러한 서울의 지리를 사회적 위계와 권력의 이동 경로로 설계했습니다. 즉, 영화 속 인물들이 움직이는 공간 자체가 그들의 힘, 신념, 혹은 한계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2. 부패는 고급화됐다: 새로운 적 ‘이선호’의 무대
이번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요 악역은 재벌 후계자가 아닙니다. 그는 사모펀드 대표 출신의 신흥 금융 권력가 ‘이선호’입니다. 외견상 그는 스마트하고 말끔한 이미지지만, 그가 저지르는 일은 전작의 조태오보다 훨씬 복잡하고 은밀합니다.
이선호는 여의도 고층 오피스에서 불법 자산 거래를 주도하고, 정치인과 언론을 움직이며, 사회적 약자의 투자 실패를 유도한 뒤 파산으로 몰아넣습니다. 그의 주 활동 무대는 정장 입은 범죄자들이 모여 있는 유리빌딩, 내부 인테리어는 현대적이고 세련되지만 그 안에선 법의 감시망을 우회하는 고급 범죄가 진행됩니다.
이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부패는 더 똑똑해졌고, 더 깊숙한 구조 속으로 들어갔다.”
이선호의 세계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영화는 그 구조를 서울 도심의 여러 층위로 해석합니다. 엘리트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대화, 스카이라운지에서 이루어지는 협상, 로비에서 결정되는 민생. 모든 것이 “보이는 곳에서 벌어지지만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일들”입니다.
3. 서도철과 진영, 서로 다른 정의의 경로
영화는 ‘정의’를 하나의 해답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형사의 서로 다른 방식을 통해 정의의 복잡성을 말합니다.
- 서도철(황정민): 현장 중심, 경험과 직감. ‘정의는 행동’이라는 철학.
- 진영(정해인): 젊은 세대. 데이터와 제도, 시스템 수사 중시.
이들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공간 안에서 각자의 경로로 정의를 추구합니다. 광화문 청문회장에서 만났다가, 여의도 주주총회에서 다시 협력하며, 강남 유흥가에서 결판을 냅니다.
그 과정은 단순한 ‘버디 무비’의 전개가 아니라, 세대 간 정의의 방식과 감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구조적 장치입니다.
결국 영화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의는 한 사람이 이룰 수 없다. 세대와 방식이 다르더라도, 뜻이 같다면 함께 가야 한다.”
4. 공간이 주는 긴장: 서울의 풍경과 권력의 감정선
‘베테랑 2’의 공간 연출은 탁월합니다. 카메라는 종종 초고층에서 내려다보는 시점과 지하주차장, 폐쇄된 회의실 같은 밀폐 공간을 교차하며, “이 사회는 누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누가 아래에서 숨죽이는가”를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예시:
- 강남 펜트하우스 회의 장면: 완벽한 인테리어, 정적인 카메라. 시민의 삶을 조종하는 무표정한 대화.
- 지하철, 골목길, 재건축 반대 시위: 핸드헬드 카메라, 잡음과 불안한 프레임. 약자의 현실과 시선.
이러한 공간 연출은 류승완 감독 특유의 리얼리즘과 풍자 감각이 결합된 방식으로, “서울이란 도시 자체가 권력의 구조이자 투쟁의 무대”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결론: 정의가 흔들리는 서울, 우리가 마주한 풍경
‘베테랑 2’는 다시 한번 묻습니다.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 질문은 경찰서가 아닌, 여의도 회의실, 강남 오피스, 청문회 마이크, 그리고 서울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영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치던 도시의 장면들을 권력의 작동 공간으로 재구성하며, 도시 속에 살아가는 시민들이 겪는 불균형과 좌절, 그리고 희망의 실마리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베테랑2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사회 구조에 깊이 뿌리내린 부조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안에서도 싸우는 사람들—서도철, 진영, 그리고 시민의 존재—를 통해 “그래도 정의는 가능하다”는 최소한의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