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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시대의 공감영화 (부산행, 사회비판, 감염)

by ghkuio13570 2025. 5. 11.

 

 

 

2016년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영화 부산행은 단순한 좀비 액션을 넘어선 작품입니다. 급속도로 확산되는 바이러스, 폐쇄된 공간에서의 인간 군상, 그리고 감염자보다 더 무서운 이기심과 혐오… 이 영화는 감염병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공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사회 시스템의 취약성과 인간성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특히 2020년 이후 COVID-19 팬데믹을 겪으며 부산행은 단순한 ‘재난 오락물’을 넘어 ‘예언서’처럼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감염자 확산, 정부의 대응, 혐오와 분열, 그리고 개인의 선택은 현실의 위기 상황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부산행의 줄거리를 기승전결 구조로 분석하며, 그 안에 담긴 사회비판과 감염의 서사, 인간성의 질문을 집중적으로 해석합니다.

1. 기(起) – 일상에서 재난으로: 정상의 탈을 쓴 불안의 시작

영화는 서울의 평범한 출근 아침을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성공지향적인 펀드매니저 석우(공유)는 이혼 후 딸 수안(김수안)과 살고 있지만, 둘의 관계는 소원합니다. 수안은 생일에도 아빠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어머니가 있는 부산으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마지못해 동행을 결정한 석우는 딸과 함께 KTX를 탑니다. 하지만 이 열차는 곧 감염자와 생존자가 뒤섞인 지옥으로 바뀌게 됩니다.

기차가 출발한 직후, 한 감염 여성이 몰래 열차에 탑승하면서 첫 감염이 발생합니다. 이 여성은 몇 분 만에 좀비로 변하고, 승무원을 공격합니다. 순식간에 감염자는 늘어나고, 열차는 더 이상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탈출 불가능한 ‘감염 실험실’이 됩니다.

기차 내부의 혼란과 함께 서울 외곽에서는 도로 통제, 사이렌, 비상 방송이 나오기 시작하지만, 정부는 "통제 중"이라는 모호한 발표만 내놓습니다. 초반의 가장 큰 특징은 정상적인 일상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비정상성입니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좀비 장르’를 넘어, 공공시스템의 붕괴와 초기 대응의 실패라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내포합니다.

2. 승(承) – 감염 확산과 인간의 본색: 공동체인가, 자기 보호인가

열차는 대전을 거쳐 동대구, 밀양 등 남쪽으로 내려가지만 감염은 멈추지 않습니다. 감염자들은 빠르게 퍼지고, 생존자는 각 차량으로 흩어지며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입니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감염병 상황 속 인간의 다층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 석우: 처음엔 “자기 딸만 중요”한 이기적 캐릭터였지만 점차 타인을 돕는 인물로 변화.
  • 상화(마동석): 정의롭고 다정한 인물로, 아내 성경(정유미)과 함께 끝까지 사람들을 구함.
  • 용석(김의성): 극도의 이기심으로 집단의 안전을 해치는 인물로, 현실 속 ‘위선적 리더’의 대명사.

감염이라는 극한 상황은 이들로 하여금 진짜 얼굴을 드러내게 만듭니다. 사회적 지위나 체면은 의미 없고, 남은 건 오직 생존을 위한 선택뿐입니다.

또한 정차한 대전역 시퀀스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정부는 감염자 정보를 숨기고, 군은 시민 보호가 아닌 검열과 격리, 무차별 통제를 실시합니다. 대전역에서 군대가 감염되어 있는 모습은 정부 시스템이 더 이상 보호막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이는 현실에서 정부 신뢰가 무너졌을 때 시민이 겪는 공포를 은유합니다.

3. 전(轉) – 혐오와 배제의 좀비가 된 인간들

가장 큰 갈등은 감염자가 아닌,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 벌어집니다. 감염 여부가 불확실한 사람을 배제하려는 사람들과,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 사이의 벽은 점점 높아집니다.

13번째 칸에서 벌어진 사건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집약합니다.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의심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 사람들. 이들은 안전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두려움에 가득 차 있고,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타인을 내칩니다. 이는 곧 현대 사회의 배제와 혐오 메커니즘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며, COVID-19 시기 확진자, 의료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상화는 감염되었음에도 아내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고, 석우는 상화의 희생을 통해 ‘진짜 부모’로 성장합니다. 이런 상반된 선택은 영화가 단지 공포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사회 드라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4. 결(結) – 희생 이후의 인간성: 감염 이후 남겨진 것

부산에 가까워지며 열차 안의 생존자는 석우, 수안, 성경 세 명뿐입니다. 하지만 석우는 감염되었음을 깨닫고, 수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열차에서 몸을 던집니다. 그는 영화 초반의 냉혈한 아버지에서, 끝내 자신을 희생하는 진짜 부모로 거듭났습니다.

부산에 도착한 수안과 성경은 터널 입구에서 저격병의 총구 앞에 서게 됩니다. 군은 그들을 감염자라 의심하고 사살 명령을 기다립니다. 그때, 수안이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노래를 부르며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적 클라이맥스입니다. 좀비도, 총도, 칼도 없는 가장 평화로운 장면이지만, 인간다움이 가장 진하게 묻어나는 순간입니다. 이는 곧 메시지입니다. “우리 안에 인간성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끝난 게 아니다.”

결론: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무관심이다

부산행은 좀비물이지만, 사실상 인간 군상극, 사회 비판극, 감염 사회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도 훌륭한 영화였지만, 이후에는 현실과 맞닿은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습니다.

석우, 상화, 성경, 수안… 이들이 보여준 행동은 우리 사회가 감염병 시대에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정보의 투명성, 공동체적 연대, 책임 있는 행동,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신뢰. 이 네 가지는 우리가 좀비보다 더 무서운 이기심과 혐오를 넘어서기 위해 꼭 필요한 가치입니다.

부산행은 묻고 있습니다. “다음 재난이 왔을 때,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